그냥 일기

요새 쓸 이야기가 너무 밀려있지만 급한대로 시의성이 지나기 전에 지난 며칠 사이에 감명 깊었던 두가지 이야기만 기록해두고 싶다.

오후의 산책 멘토링

금요일날 회사에서 선배 A를 만나서 1시간동안 복도 산책을 하며 담소를 나눴다. 내가 최근에 내가 원래 있던 조직에 있는 주니어 엔지니어를 멘토링으로 소개받았는데, 그 친구가 첫 고민으로 내가 느꼈던 이 조직에서의 고질적인 문제를 언급하면서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었는데 “나도 그래서 도망나왔어” 란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그럴 수가 없으니 대답한다는게 예전 매니저가 나한테 했던 약간 불쉿 멘트 비슷하게 답습하게 되는 나를 발견했다고 우스개소리로 말했는데 그 선배가 그러지 말라면서.

멘토링은 무슨 고과에 큰 도움되서 하는게 아니고 커리어를 길에 보고 길게 남을 인맥을 위해서 투자하는 건데, 니가 너 매니저가 그렇게 하나마나한 멘트할 때 도움이 됐어? 그 말 믿었어? 하길래 아니 ㅠ 그 다음부터는 어차피 말이 안통한다 생각하고 점차 진짜 불만들은 공유하지 않게 됐지…. 했더니

거봐 나는 언제나 transparency 가 최고라고 생각해. 당장 상황을 바꿀 수 없다해도 항상 진정성있고 솔직하게 대하자 주의거든. 그래서 매니저가 된 이후에는 솔직함 전략을 유지하는게 가끔 힘들때도 있는데 항상 노력해. 나중에 몇년 지나서 니가 매니저가 되면 그런게 다 결국 돌아와. 그 사람들도 다 뭔가를 생각하고 있고 누군가가 너에 대해 물어볼때 자기 생각을 얘기할거거든. 길게 보면 솔직한게 항상 좋아.

이 선배와 이렇게 친해진 것도 애초에 선배의 솔직함덕분에 그를 전적으로 믿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인데 왜 나는 반대 입장에서 그 생각을 못했을까 유레카 모먼트였다. 나는 이렇게 당장 눈앞의 무언가가 아니라도 삶을 이렇게 항상 long-term 으로 생각하고 매사 옳은 work ethic으로 매사 영혼있고 솔직한 사람들을 보면 너무 좋고 멋지다.

3년 반 동안 회사에서 사소하고 고마운 일상들이 곳곳이 숨어있다. 이 날 얘기하며 1시간동안 기나긴 건물 20과 21을 몇바퀴를 돌았는데 그러고보니 우리 코로나 전엔 맨날 이렇게 걸어다니면서 미팅했었는데 오랜만에 다시 하니까 좋지 않냐며, 따뜻한 기억 하나 또 하나 쌓은 날.

Never Have I Ever

금요일 밤에 심심해서 보기 시작했는데 주말 내내 시즌 2개를 끝냈다. 고등학생인 인도계 미국인 Devi의 학교 생활에서 겪는 성장 드라마인데, 나는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니지 않았기에 학교 수업은 어떤 식이고 애들은 무슨얘기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궁금했는데 미국의 고등학교 생활을 잘나가는 백인 여자애가 아닌 너디한채로 학교에서 인기 많고 싶은 모범생 Devi의 렌즈를 통해 보는게 더 와닿았고 재밌었다.

지난번 Love is blind 시즌 2에서 백인들만 사귀어보았다는 인도계 미국인 출연자 남자가 자긴 백인 여자만 만나왔다며 인도계 여자를 만나는 것을 생소해는 것에 대해 자신의 인종을 쿨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self racism 현상을 레딧에서 읽은 후 처음 이 주제를 알게 되었는데, 여기서도 그런 주제를 다루고 있다.

자신이 인기가 없는 이유를 인도계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던 주인공이, 새로 인도계 친구가 반에 전학와서 학생들의 인기를 끌자 자신이 인기 없는 이유가 race 때문이 아니라는 반례가 되는 것 때문에 스스로 불편해하고, 친해지길 거부했다가 인도계 친구를 만들라는 엄마의 강요에 의해 시간을 보냈다 의외로 둘이 비슷한 환경에서 말안해도 통해도 부분이 많은 것을 알고 좋아하다가 다시 그 친구가 자기가 좋아하는 남자애랑 잘되가는것을 보면서 미워하는 여러 미묘한 10대의 감정들을 잘 묘사해놨다.

학교에서 짝사랑 때문에 맨날 사고쳐서 학교에서 Crazy Devi 라며 또라이로 유명해지는데 떼라피스트에게 저 진짜 crazy 인걸까요 모두가 절 crazy라고 불러요 하며 오열하는 주인공에게 떼라피스트가 해주는 말이 너무 와닿아서 얼른 적어놨다.

“You feel a lot. Which means sometimes you’re going to hurt a lot, but it also means you’re going to live that is emotionally rich and really beautiful.”

대체 누가 쓴 드라마길래 이렇게 디테일하고 중요한 이슈들을 이렇게 잘 다뤘나 싶어서 찾아봤더니 명불 허전 Mindy Kaling 작품이었음.